보급품 빨래비누 깎아서 세탁기 돌리던 시절

보급품 빨래비누 하나씩 깎아서 통에 모아두면 그걸 세탁기 돌릴때 넣어서 돌리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비누를 칼로 얇게 잘 깎아서 넣어야지 너무 덩어리로 넣으면 비누가 잘 녹지 않습니다.

그리고 빨래비누는 여름에 넣어야지 겨울엔 물이 차가워서 안 녹습니다.

군대에서 보급품이 나오면 그걸 다 써야하기 때문에 어떻게든 다 활용을 하는 편이었습니다.

건빵은 신교대에서나 맛있었지 자대에 오면 애물단지 취급을 받습니다.

보급품이 한번 나오면 휴지 같은 것들은 인원수대로 나눠갖지만 건빵처럼 잘 안 먹는 제품들은 한쪽 끝에 있는 안 쓰는 관물대에 그걸 다 넣어두고 꺼내서 씁니다.

빨래비누 역시나 잘 쓰지 않는 품목이었고 그나마 쓰는 게 설거지할때 퐁퐁 대용이었습니다.

짬 딸리는 이등병이나 일병이 그걸 관리하는데 설거지할때 수세미를 놓고 그 아래에 빨래비누를 넣어서 수세미로 빨래비누를 몇 번 긁어서 그걸로 설거지를 했습니다.

그걸로 설거지를 하면 일단 기름때도 뽀득뽀득하게 씻겨나가기 때문에 사용감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남는 빨래비누는 깎아서 세탁기 돌릴때 썼지만 그것도 짬 딸릴때나 쓰지 상병이 되면 세제를 쓸 수 있어서 상병을 달면 샴푸랑 세제부터 사곤 했습니다.

말년쯤 되면 이제 세제 쓰는 거 귀찮은 말년 병장들이 빨래비누로 세탁기 돌리곤 했었습니다.

침상을 닦을땐 치약을 이용했는데 왜 치약이 쓰이게 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냥 하다보니 그렇게 계속 쓰게 되었습니다.

치약은 보급이 많이 나오는 편이라 항상 남아돌았고 그렇게 남는 치약으론 침상을 닦았습니다.

침상에 치약을 주욱 짜놓으면 막내들이 걸레로 침상을 깨끗하게 닦아나가는 게 청소시간의 시작이었습니다.

소변기는 솔을 들고 하나씩 붙잡아 안쪽까지 깨끗하게 닦았기 때문에 냄새는 전혀 나지 않았습니다.

청소가 얼추 마무리되면 이등병이랑 일병은 쓰레기를 버리러 분리수거장에 갑니다.

그리고 분리수거장은 일병들의 갈굼이 시작되는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일병은 감히 내무반에서 밑에 애들을 갈굴 짬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암묵적으로 분리수거장에서만 갈굴 수 있도록 허용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항상 쓰레기를 버리러 가자고 하면 한번씩 움찔하곤 했습니다.

분위기가 안 좋으면 올 게 왔구나 생각하고 갔다가 털리고 오는 게 일과 중 하나였습니다.

식사시간엔 포크수저만 사용했고 피엑스는 일병을 달아야 이용할 수 있었습니다.

웃긴게 일병을 달면 그때부터는 뽀글이를 먹을 수 있지만 냉동식품은 상병을 달아야 먹을 수 있는 권한이 생겼습니다.

아니면 상병과 같이 피엑스를 가야 냉동을 얻어먹을 수 있었습니다.

일병일때는 혼자 피엑스를 갈때도 살짝 눈치를 봐야했습니다.

일과시간에 가는 건 안 되고 식사 후 잠깐의 휴식시간일때나 가는 게 일반적인 이용방식이었습니다.

결국 제가 전역할때쯤 되면서 그런 부조리들이 하나씩 풀리기 시작했는데 지금 군생활을 들어보면 진짜 미개한 시절이었구나란 생각이 듭니다.

요즘은 그래도 월급이 나름 사람답게는 나오니 군생활을 하면서 돈이 부족해 휴가나 외박을 나가고 싶어도 못 나가는 일이 별로 없다는 게 가장 좋은 점인 것 같습니다.

저는 3달치 월급을 모아서 그걸로 동기들과 외박을 나와 잠시 쉬고 들어간 적이 있는데 그때 그런 시절이 지금은 재밌지만 딱히 그립진 않습니다.

두 번은 절대로 하기도 싫고 하지도 못 할 경험이기에 그냥 추억으로 남겨둘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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