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때 잠깐 공덕역 근처 인쇄소 알바를 다녔던 적이 있습니다.
한 2주일인가 다녔었고 몸이 엄청 힘든 일은 아니어서 여자분들도 몇 명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때는 겨울이었고 꽤 추운 시기였는데 졸업앨범이나 논문을 쓰는 시기여서 한 3일째 일을 하러 갔더니 갑자기 명함을 돌리러 가자고 해서 좀 당황했었습니다.
나는 그냥 공장에서 단순 노동이나 하고 돈을 벌어야겠다 했었는데 갑자기 서울대를 가자고 하더군요.
서울대까지 가자고 하길래 그때는 뭐 왔다갔다 시간도 금방 가고 어차피 이것도 다 일당이니 나야 땡큐라는 생각으로 같이 갔었습니다.
근데 막상 서울대에 도착하니 명함을 저한테도 나눠주면서 연구소를 위에서부터 하나씩 다니면서 영업을 하라고 했습니다.
나는 그냥 알바를 하러 온 건데 왜 영업을 시키냐고 물어보니 이거 아주 쉬운 거고 다른 사람들은 다 하는데 왜 너만 불만이냐는 식으로 뭐라뭐라 했던 게 기억납니다.
가스라이팅을 당한 건데 그때는 너무 어렸고 당장 여기서 안 하면 오늘 하루 일당도 날라갈 것 같아서 그냥 얼굴에 철판 깔고 연구실을 돌아다니며 졸업 논문 쓸때 여기 인쇄소에 맡겨달라고 명함을 뿌리면서 다녔습니다.
그때 명함을 뿌렸던 건지 아니면 뭔가 다른 카다로그 같은 걸 뿌렸던 건지 잘 기억이 안 나는데 아무튼 박스로 뭔가를 싣고 거기에 나눠줄 것들을 담아서 여기저기 다니면서 뿌리곤 했습니다.
한 번만 간 것도 아니고 나중에 또 한 번을 갔었는데 계속 불만이 있는 표정을 짓고 해서 그런가 2주일하고 나니까 그만 나오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알겠다고 하고 그만 나갔던 기억이 납니다.
인쇄소 안에서는 책자 포장해서 나르고 종이 잘라진 거 옮기고 뭐 그랬던 기억이 있는데 종이를 자르는 칼날을 교체할때 가장 신경써서 주의했던 것도 기억납니다.
칼날이 그 무게로 떨어지면서 종이가 잘리는 건데 날카롭기도 엄청 날카로워서 칼날을 옮기다가 그게 넘어지면 사람이 그대로 잘려나간다고 하더군요.
조심해야한다고 엄청 겁을 줘서 칼날 근처로는 얼씬도 하지 않았는데 기계 다룰때 진짜 위험하긴 하겠구나 생각했었습니다.
인쇄소 내부에서 일하는 건 그냥 단순 노가다였고 가끔 트럭이 오면 책자를 가득 날라야해서 그때만 힘들지 나머지는 별로 힘든 것도 없었습니다.
그때는 그냥 이렇게 공장에 취직해서 단순한 일을 하며 돈을 벌어서 차도 사고 결혼도 하면서 남들 사는 것만큼 살았으면 좋겠다 생각했었는데 그걸 다 이룬 지금은 오히려 너무 가난한 것 같고 불만이 더 많아졌으니 이것도 참 아이러니합니다.
인쇄소 알바 하던 곳이 어딘지 가끔 공덕역 근처를 지날때마다 찾아보곤 하는데 그때 투덜거리고 뭐라 했었던 그 직원은 지금쯤 뭘하면서 살고 있을지 가끔은 궁금해집니다.